그룹명/사진

옛날 남대문~

양수골 2013. 9. 17. 18:06

 

 

한성부윤 유정수 ‘가가금령(假家禁令)’ 발표

그러나 도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함께 상가로서 가가가 일반 백성에게 매우

 

유용했기 때문에 백성의 반대로 박영효의 의지는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한성판윤 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만약 박영효의 정책이 시행됐다면

카펜터의 사진에 나타난 가가의 생생한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1895년 4월16일 한성부윤 유정수의 명으로 ‘가가금령(假家禁令)’이 발표된다.

즉, 도로를 침범해 가옥을 건축하는 일을 일절 금하는 지시였다. 그 취지는 일차적으로

도로의 원래 폭을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일본인의 남대문로 진출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었다.

 



한성도
한양의 성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중앙에 동그랗게 표시해 놓은 부분이 한양성이고 빨간 동그라미들이

 

한양의 문들인데 대문이 4개 소문이 4개 있습니다.(나머지 하나는 모르겠음)
한양성의 가장 아래부분에 큰 산이 하나 걸쳐있는데 그 산이 남산이고 남산 때문에 남대문은 정

중앙에 위치하지 못하고 남산 왼편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지도의 맨 아래부분 진하고 굵은 검정색으로 가로 질러 있는 것이 한강입니다. 한강에는 돗단배들도

다니는군요 ^^;

 





숭례문 바로 안쪽
기와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한양에는 인구밀도가 무척 높았다고 합니다.

 



남대문통
남대문통입니다. 숭례문 바로 안쪽에 성벽을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대문통"이라는 명칭은 일제때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으로 들어오는 일본군

 

 




일본인 거류지역으로 가는 일본군




전차 개통 당시




숭례문 우립


숭례문 우좌

"우립"과 "우좌"는 "소가 섰다", "소가 앉았다"라는 뜻의 한자입니다. 별 내용아닙니다. ^^;




숭례문 칠패(시장)




1897




1897원경




1900년대







1910




1950




한국 전쟁 직 후
전쟁으로 숭례문은 전체적으로 내려 앉아서 완전히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대공사를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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