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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주 적상산 등산후기, 왕보실록의 사고지, 성보박물관..

양수골 2009. 3. 25. 13:00

무주 적상산(赤裳山 1034m) 등산후기
2008.6.14(토)
찾아 가는 길: 대진(통)고속도로- 무주IC- 좌회전 4KM- 서창리 적상산통제소- 서창마을뒤, 좌측으로 올라감
코스: 서창마을-좌측- 장도바위- 정상능선 삼거리- 우측 향로봉(1034m), 다시 오던길로 내려와 (좌측) 적상산성- 안렵대- 안국사- 다시 안국사뒤로 올라가- 삼거리- 서창리로 하산

 

무주 적상산(1034m)에 올랐다. 초 여름날씨에 구름도 조금 바람도 조금 불어 산행하기 좋은 날이다.
원래 영월 구봉대산을 갈려고 준비했으나 기름값때문에 장거리는 자중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청주에서 2시간 이내 접근할 수있는 곳을 택하였다. 옛부터 가보고 싶었던 무주 적상산을 가기로 맘먹었다. 적상산은 호란을 피해서 조선왕조실록(당시 묘향산사고본)을 대피시켰던 산으로 유명하다. 전북은 왕조실록의 고을이다.
임진란때 전주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전주사고 참봉 오희길, 지역유생 손홍록, 안의에 의하여 내장산(후에 마니산으로 이동하여 정족산본이 됨)으로 피신하여 오늘날까지 유일한 원본(정족산본)으로 전하게 되었다. 나머지 사고본들은 불에타서  전주사고본(= 정족산본, 서울대 규장각소장)으로 복원한 신인본 및 교정본(명종이전까지)이다.
임란이후 4대사고가 모두 깊은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정족산(강화), 적상산(무주), 태백산, 오대산 4사고본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정족산본은 서울대 규장각, 적상산본은 북한 김일성대학, 태백산본은 국가기록원(부산), 오대산사고본 일부(서울대규장각, 일본 동경대로부터 환수)에 보존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정보화(디지털화, 원문텍스트, 번역완료)가 완료되어서 국사편찬위원회 왕조실록 홈페이지(바로가기)를 통해서 국민들께 무료제공된다.
참고로 실록사고의 이동과정은 다음과 같다.
 

실록의 사고(史庫)
충주사고: 고려시대부터 실록 보관
1439년(세종 21) 전주와 성주에 새로 설치
1445년 3부를 더 등사하여 4부를 만들어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4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춘추관, 충주, 성주사고의 실록은 모두 불타버림.
전주사고의 실록만 전주 유생인 안의와 손홍록의 공으로 보관됨.
1603년부터 1606년까지 재출간.
춘추관과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사고를 새로 설치하고 보관.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에는 신인본, 마니산에는 전주사고본, 오대산에는 교정본을 보관.
춘추관본은 1624년 이괄난 때 모두 불탐.
묘향산사고본은 무주의 적상산으로 옮김.
1678년 강화도 정족산에 새로 사고를 짓고 마니산사고본을 옮김.
1910년 병합 뒤 정족산, 태백산사고본은 규장각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 적상산사고본은 구황궁 장서각으로 이관. 오대산사고본은 동경제대로 반출.
오대산사고본은 관동대지진 때 거의 타서 없어지고 72권만 남음. 적상산사고본은 한국전쟁 때 북한이 가져가 김일성종합대학에 소장. 정족산사고본과 태백산사고본은 1930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 해방 이후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 그 가운데 태백산본 848책을 1984년 정부기록보존소로 이전. 현재 규장각에는 정족산본 1187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97책 등 총 1311책의 실록이 소장되어 있음.

* 서창마을 입구에 플랑카드가 붙어있었다. 북한에 <적상산사고본> 되돌려달라고 요구...
전북 무주군이 조선왕조실록 적상산본 환수운동을 시작했다. 무주군은 22일 적상산본 조선왕조실록 환수 결의대회를 갖고 적상산본 되찾기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무주 적상산 사고는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5대 사고였다. 적상산본은 1634년 묘향산 사고본이 적상산 사고로 옮겨져 보관돼 오다 1911년 일제에 의해 적상산사고가 폐지되면서 이왕직 장서각에 보관됐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반출돼 현재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중인으로 밝혀졌다. 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의 태백산본과 정족산본, 오대산본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무주군은 현재 북한 김일성대학에 보관중인 조선왕조실록 적상산본 환수운동을 벌여 나가는 한편 적상산 사고의 복원 노력도 경주해 나가기로 했다.무주군도 거리 캠페인과 무주를 찾는 관광객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내가 한때 규장각 정보자료 관리 책임자로서(규장각정보자료괸리부장 김종은) 史庫이야기를 많이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위해서 실록의 역할은 말할수 없이 크다. 역사와 역사 지킴이가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존재한다. 실록은 위대한 진실한 역사의 기록이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왕조실록을 잘 보존관리하여 자손대대로 대한민국의 영광을 누려야 할 것이다.
실록은 오늘날 연구와 정보화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로 전승(이어짐)되고있다. 실록의 과학적 보존과 접근 열람 정보화 연구등 이용편리, 도난 재해 화재로부터의 보호가 매우 중요하다. 예산 및 전문인력, 시설을 감안할때 단순히 옛자리로 돌려달라고만 해서는 안된다.

 

대진(대전-진주)고속도로 무주IC에서 약 10분이면 서창리 적상산출입통제소에 도착한다. 무주IC 바로 옆에 있는 높은 산(치마같은 산)이 적상산이다. 적상산의 정상(최고봉)은 향로봉(1034m)이다. 적상산성 정상(1026m, 사적표지석만 있다)은 향로봉보다 낮다.
무주IC에서 좌측으로 계속 4km 가면 서창리 적상산통제소 입구가 나온다. 산길은 평탄하고 양반길이다. 돌계단으로 잘 정비되어있다. 노약자들에게 드물게 좋은 산이다. 청소년들은 물한나만 들고 달려 올라갔다. 9:20분 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오는이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내외 두사람뿐이었다. 아내는 무서우니 기다렸다 사람들 오면 올라가자고 했다. 사람들이 뒤에 올것이니 걱정말라고 타일렀다. 나는 묵주기도를 바치면 계속 올랐다. 너무 신나는 산이다. 뒤에 몇명의 등산객이 올라왔다.
사람이 별로 없는 호젓한 산, 적상산은 덕유산(남덕유)의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최영장군의 전설이 깃든 장도바위를 지나 S자길을 따라 오르면 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은 향로봉, 좌측은 적상산성과 안렵대, 안국사, 전망대가 나온다. 산행은 향로봉- 안국사(왕조실록 수호사찰)까지 왕복 총 11km 5시간, 안국사를 지나 전망대까지 왕복할려면 13.5km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물론 안국사내 '성보불교박물관'을 꼭 보기바란다. 작고 크고 진귀한 불상이 있다. 나는 입구의 석조 부처님과 악수를 하고 나왔다. 불교는 너무 가까이있다. 나는 천주교 골수 신자다. 그러나 어쩐지 부처님을 보면 친구같이 사귀고 싶어진다.  서창리에서 오르면 원점회귀 산행을한다. 향로봉에 갔다가 다시 오던길로 내려와 안렵대, 안국사를 탐방하고 다시 올라 능선 삼거리에서 서창리로 내려가면 된다.
오늘 즐거운 산행을 하게 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린다. 동행한 아내에게도 감사드린다. 젊은이들은 우리 부부가 너무 닮았다고 한다. 사진찍어 준다고 폼잡으라고 졸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결혼 35주년 기념일이었다.

 

 탐방코스

 최영장군의 전설, 이렇게 긴 칼이..

 적상산은 산전체가 천연요새 산성으로 되어있다.

 이정표가 코스를 안내

 정상 향로봉에서

 

 나무가 부풀어 다른 식물이 자란다

 안렵대에서본 향로봉

 안렵대, 실록을 대피했던 석굴

 안렵대에서

컴컴한 석굴

 아름다운 천연의 산성

 안국사, 실록 수호사찰, 제법 큰 사찰

 안국사에서

성보박물관 

진귀한 부처님상

 부처님과 악수를 했다

 산성비문 (산성정상), 위에 큰 안테나가 있다

출처 : 에리스김의 사랑방
글쓴이 : 에리스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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