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용량과 디자인
교육용
16비트 PC 소비자가격:6805C: 495.000\(모니터 별도)
6815C: 550.000\( '' )
보조기억장치 플로피 디스겟
286컴퓨터 시대배경;1997~ 1989년도
소비자가격
모델SPC4200-CW 200 : 890.000\*1.1=979.000\
CW102 : 1.050.000\ * 1.1=1.155.000\
CW104 : 1.120.000\*1.1=1.232.000\
14" 모노 모니터 포함 ,부가세포함
학원수강비 3개월 ,24만\별도
PC본체 값 145만원 (VAT, 모니터 별도)
MS-MOS 과정 학원수강료 8만(월) * 3개월= 24만\
PC본체 145 + 모니터 30만 + 24만(개별 컴퓨터 사용 수강료 )
합: 199만\ * 1,1 (부가세)= 219만\
한국의 1990년 1인당 국민소득 : 5893$ * 707(1$환율)
=4.166.351\
1991년 국민소득 : 6820$ * 733
=4.999.060\
동시대,. 스쿠프 신형 자동차 1대: 6.000.000\
386컴퓨터 시대적 배경 :1990년
권장 소비자 가격: 4.499.000\
시대적인 배경: 1994도
보조기억장치 플로피 디스켓(FD)
2011년 30년 만의 퇴장
1981년 IBM PC와 함께 등정했던 3.5인치 플로피기스크가 2011년3월 퇴장한다.
마이니치에 따르면,소니는 2010년, 23일 날로 위축되는 전세계 3.5인치 플로피디스크(FD) 시장상황에 2011년 3월 일본내 공급을 중단할 것 이라고 발표했다.
소니는 전세계 FD생산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보도는 3.5인치 FD가 무선전신만큼 상징적이지는 않지만, 거의 30년동안 어디서든 PC에 저장하고 파일을 전송하는데 필수적이었다거 전한다.소니는 1981년 3.5인치 FD를 처음개발했고 이는 5.25인치 FD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파일과 프로그램 용량}이 커지면서 FD는 값싼 대용량포멧의 저장장치에 밀려났다.CD,DVD,Zip,USB드라이브 같은 저장장치의 등장에 따라 지난 2002년 4700만장에 이르렀던 소니의 FD판매량은 지난해 2009년도 1200만장으로 줄었다. 대부분의 FD생산업체들은 이미 오래전 시장에서 철수했으며 소니도 대부분 해외시장에서 판매를 중단해 오고 있다. 이 같은 조짐은 이미 수년전 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8년 아이맥이 등장하면서 애플은 플로피디스크를 완전히 없애버린 최초의 컴퓨터기 됐다. 이를 델이 뒤따랐다. 1977년 라스베가스 가전쇼(CES)에서는 최초의 컴퓨터인 애플II를 통해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슬롯을 설치한 PC를 처음 소개했다는 점이다. 워즈니악(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컴퓨터 공동 창업자) 원래 애플 II 의 데이터 저장장치로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했었지만, 마이크 마쿨라의 조언에 따라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를 장착했다. # 저장용량 : 5.25 인치 FD는 1,2 MB , 3.5 인치 디스켓은 1.44 MB 이다.
#컴퓨터 저장용량 단위
1024 Byte(바이트) =1 KB( 키로 바이트)=영자.숫자 1024자 저장.한글,한문 512자저장
1024 KB = 1 MB (메가 바이트)
1024 MB = 1 GB (기가 바이트)
1024 GB = 1 TB (테라 바이트)
KB 보다 작은 Byte가 있고, 보다 작은 단위로 Bit (비트)로 기본단위로 2의 3세곱: 2*2*2 = 8 bit = 1 Byte 이다.
1991년 노래방 반도체 반주기 & 부품들 (혁신의 시대)
1992년 필자가 취급하였던(딜러,설치,운영,A/S담당), 라이브 콘 반도체 반주기 브랜드와 구조가 달라
헷갈리네, 메인 보드 같고, 매월 신곡 10곡씩 추가 입력을 한다.좌측,CPU칩이 내장되어
반주기 전반을 컨트롤한다.확장팩을 사용하여 보조기억장치인 메모리반도체를 추가 용량 증대가 가능하였다.
영상카드로 반주기에서 TV 모니터에 영상송출과 노래 가사자막을 뛰운다
개미같이 붙은 아주 작은 소자가 저항이다.
문의:신우전자. 서울 구로구 02)716-2534
(대표 권윤진 011-688-2534.각종 S/W 잭류,저항들 (Led조명부속,전자부품등 취급)
싸운드 카드로 음원을 마이크와 반주음을 스피크에 전달한다.
통신 카드로 카운트와 반주기, TV 영상과 상호 통신을 주고 받는다
조명카드로 실내의 선곡에 따른 미라볼의 조명을 제어 한다.
#보조기억장치(몰더형 메모리 반도체 내장)
노래 한곡당 4.3 MB 테이터 저장 ( 5분기준)
1990년, CD(compact disc) 저장용량 640 MB , 최대 70분(18~20곡)
# 노래방 상업화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노래 가사 자막이다. 초창기 1992년 10월 이전 버젼에는 노래 자막이 고정형의 WHITE 색상 고정 자막이었으나, 이후 Color자막 버젼으로 바뀌었다. 광음전자 반주기는 white색 자막이었다.
LDP플레이어
# 1993년 대전 4월경, 선화동 어느 노래방에 LDP 시스템 노래방을 인수하고,해체하면서, 신형 라이브 콘 반주기로 교체하면서 LDP노래방을 처음 접했다.컴퓨터 노래방에서는 통상 LDP를 기본사양으로 사용한다. 각 룸의 영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그런데,이 LDP만으로 노래방을 운영하는 업소를 처음 보았다. 기계실이 따로 있어야하고
무엇보다도. 직원한명이 기계실에 고정 배치해야한다. 가정용은 몰라도 막 사용하는 대중적인 업소용에는 실패한아이템이다.룸 10개일때, 10대 *80=800만원.LP판(음원+영상+가사자막) 양면 8곡 , 개당 3만\, 기본 1500곡 /8=187.5개 187.5* 3만\= 5.625.000\+800만=13.625.000(반주기 부분만)+ 1인인건비. 또 그래픽 노래방도 있었다
매일신문 1993년 9월28일짜
몰더형 메모리 반도체 ( 음 소거와 재사용이 된다)
형광등불빛에 장시간 노출하면, 입력된 데이터가 날아간다
반드시 데이타 입력후 유리부분을 봉인해야한다, 또한
COPY기로 다량 재입력 가능하다.
# 1990초 반도체 4MB 모듈 램하나 시세가 : 20만\
1993년에 로랜드 싸운드 카드(전자오르간의 음원핵심부품으로 다양한 악기소리를 출력한다), 수입 단가 5만\
1992년 8월에 비메이커 광음전자 반주기에서
라이브 콘 반주기로 교체할때,단 5개월 사용(,초기투자 실패,축제노래방.충주) 중고 시세로 대당40만\에 팔았다
"반주기 부품만 재사용하는 것 외는 사용할 것이 없다"라고 했다.(동업자 지사장 과 필자는 같은 학교,같은 학과 선후배사이 ) 이때 까지도 반도체의 존재를 몰랐다. 우리는 의상디자인전공이다.
그 재사용하는 부품이 고가의 반도체 부품이었다.
또, 1993년에도 반도체 메모리가 품귀 현상이 일어, 오다를 받아 놓고도 3~5개월 대기하던 시절이다.(현금 선입금 30%) 007 가방에 가득 채우면,
당시 현금거래 1억이라는 애기를 들었다. 그 메모리 용량은 잘모른다.용량이 얼마짜리인지모르나, 몰더형이 개당 1만\. 중고가 7000\이라고 기억한다.필자가 취급한 라이브 콘, 반도체 반주기부품에는 기본 1000곡에 몰더형 반도체가 보조기억장치로 대략 3~40십개 박혀져 있었다.
# 필자가 아직 의문에 남는 것은 컴퓨터 반도체 반주기를 최초 중소기업에서 개발할때,
보조 기억장치로 1000곡, 현재의 MP3 용량 음원 곡당 4.3MB 일경우, 4300MB의 메머리 용량이 필요하다 . 이런 대용량을 당시 반도체의 용량이 저조한 가운데
어떻게 응용했나이다. 아이디어가 빛났다.EX) 플로피 디스켓 용량 1.44 MB로 1000곡을 삽입할 경우, 4300/1.44= 2986개(부피,반주기당)가 필요하다.(1991년기준).카세트 테이프 45분용 기본 8곡 내장일때, 125개 필요 (부피,반주기당) ,CD 20곡 일때,50개 필요 (부피. 반주기당).반도체 반주기의 반도체가 아주 고가이면서 부품으로서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01) 부피가 작다. 02) 데이타(신곡) 소거, 입력이 간단하다.확장팩 사용. 03)무한대로 용량 UP데이터가 된다. 04) 관리가 간편하다
05)고장이 작다.
1980~1990년 한국 반도체 개발 현황
삼성:1983.12월 64K D램, 1984년 7월 생산에 덜어감.
1984년 10월 256K D램 개발 성공,
1986년 7월 1M D램, 1987 4M D램 개발
현대:1984년 7월 16K S램 시험생산,실제매출 1986년 64K D램을 생산하면서, 1987년 256K D램 자체개발 성공, 1988년 1M D램,
1989년 4M D램 개발. # 개발성공과 대량생산은 별개이다.
특히, 노래방의 상업적인 대성공은 2000년의 정보 통신의 혁신과 세계적인 인터넷 문명을 10년 앞당겼다. 앞에서 보았듯이 1990년 초의 개인용 PC의 소비자가격이
일반대중, 교육용으로 사용상 무리가 있다.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의 전부 아니면
50%를 차지하는 가격이다. 누가 쉽게 살 것인가.또한 소비자는 학원에 등록하여 몇개월간 시간과 비용투자하여 사용법을 배워야한다. 그 기능도 현실적이 지 못하였다. 그런데 1991년이후 노래방의 상업화는 재미교포사회에 까지 전파가 되었다. 반주기를 수출하면서 교민사회에도 대흥행에 성공했다. LA가 미국의 개발의 요람 실리콘 벨리가 있는 곳이 아닌가. 1990년초 까지 개인용 PC의 대중화는 어려웠다.이때, 개발자에게는 한국의 노래방 문화가 반도체 개발의 방향을 정해준다.즉, 돈이 된다는 좌표,상업화이다.필자도 여러 개발(섬유업)을 해보았지만, 돈이 투입되면, 100년 걸리것이 10년 이되고, 돈이 투입이 되지 않으면 10년 걸리는 것이 100후에 이루어 진다.반도체 용량의 증가이다. 부피의 감소이다. 그러면 1990년 이전의 PC 디자인에서 플로피 디스켓(FD)등, 보조기억장치는 컴퓨터 내부로 덜어가면서,간편 축소되며,또한 반도체 칩의 용량증가는 압축파일 형태로 사용할 명령어 여유가 생겨난다.이후 1995년 아이콘을 내세워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간편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유 95가 세계 PC 대중화에 기름을 붙는다.또한 컴퓨터 부품의 90%가 덜어가는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이다. 한국시장에는 1997년이후 PC의 열풍, 3000만대의 단말기 보급의 휴대폰의 열풍으로 이어 졌다. 그리고 SNS발전은 아랍의 민주화를 10년 앞당겼다. 한국 노래방의 용도에서 반도체 상업화가 없었다면,현재의 시간대에서 미래10년 후의 오늘을 보내는 시간대가 오지 앉았다
이 시작은 1991년 4월 부산 광안리해욕장 어느 청소년들의 미친듯이 노래를 부른 오락실에서
시험 개발한 중소기업아이템에서 시작되었다.옛말에 아이들은 자기 먹을 것을 타고 태어 난다는 말이 이런것이다.이 것이 없었다면, 1997년IMF이후 한국경제 회생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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