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마모토 여행2 - 스이젠지공원에서 평화를 넘어 옛일을 회상하다!
구마모토 여행2 - 스이젠지 공원에서 평화를 넘어 옛일을 회상하다!
구마모토성 에서 가토 기요마사 에 대한 오랜 회상에서 깨어나 성을 내려와서,
걸어서 전철 구마모토조 마에 熊本城前 역에 이르러서는......
전철 2호선 켄쿤(健軍) 행 전차에 탑승하여 9 정거장만에... 스이젠지 코엔
水前寺 公園 역에 내린다.
행인에게 물어 왼쪽으로 길을 건너 모퉁이를 돌아가 세상 어느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있다는 중국집을 지나니 신사의 도리이 가 나타나 일순간 어리둥절 한다.
스이젠지 공원 (水前寺 公園) 은 일명 조쥬엔(成趣園) 이라고도 하는데 1632년
가토 가문이 2대에 도쿠가와 막부의 미움을 사서 망하고...
고쿠라에 있다가 전봉된 새 영주 호소카와 타다요시 가 3대 80년에 걸쳐 만들었
다는 데, 모모야마 양식의 우아한 회유식 정원으로!!!!
정원석과 소나무의 빼어난 조화 가 훌륭하며, 8월 13~14일에 인근 玉名郡 菊水町
고분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가 쓰여진....
검이 출토된 것을 기념하여“에다후나야마 고분축제” 도 열린다고 하네!!!!
점포가 늘어선 거리를 지나 공원으로 들어서니 호수가 나오고 건너편에 봉긋
봉긋한 마치 신라왕릉 처럼 생긴 산들이 나타나는데, 후지산 을 본떴다나....
그리고 오른쪽에는 메이지천황 이 다녀간 듯 기념비가 보이는데 우린 왼쪽으로
먼저 발길을 돌린다.
넓고 크지만 잔잔한 호수에는 수많은 철새 들이 놀고 자그만 아치교 다리
밑에는 잉어 가 한가로이 노는것이....
이 스이젠지 호수 공원은 너무나도 평화 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편안하게 해준다!!!
다리를 건너니 왼쪽으로는 神水 (長壽の水) 라는 호소카와 타다토시가 지었
다는 茶室(다실) 이 보이고...
이어 이즈미 진자 出水神社 가 자리 잡았는데, 아담한 것이 여행자의 마음
마저 평화롭게 해 주는데!!!!
이 신사에서는 호소카와 가문의 위패 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이드북 책에는 “出水 神社”를 소리나는 대로 “데미즈 신사”라고
해서 그런줄 잘못 알았었는 데......
여기 팜프렛을 받아보니........ 이런? “이즈미 신사”이네? 영어로는
Izumi Shinto Shrine 이라고 적혀 있다.
옛날에 倭國(왜국)에서 百濟(백제) 를 소리나는 대로 “햐쿠사이” 라고 읽는
대신에.....,
그 뜻을 취해서 大國 이라는 뜻으로 “구다라”라고 읽은 것과 같은 것일까?
조금 다른 예이지만 일본인들은 규슈 북쪽 무역항을 唐津(당진) 이라고 쓰고
"가라쓰”라고 읽으며....
규슈 남쪽에 韓國岳 이라고 쓰고는..... “가라쿠니 다케” 라 읽는데!
이는 옛날에 선진문명을 지닌 가야인 들이 바다를 건너오면서 “가야”를
“가라”라고도 쓴 데서, 지금도 “한국을 가라” 라고 하는 것이니...
가라쓰는 "가라 즉 한국" 으로, 무역선이 김해 금관가야(임나)로 다니던 것이
세월이 흘러 중국(唐) 양자강 영파 로 무역선 목적지가 변경됨으로써....
도시 이름도 韓津(한진,가라쓰) 에서 唐津(당진,가라쓰) 으로 바뀐 것일까?
이 호소카와 가문에서 17년 전에 호소카와 모리히로 라고 일본 총리가 나왔는데
지한파 로 그의 할아버지 가 한일합방 10여년 전에 벌써 전북일대의 대 지주로...
조선으로 나갈 때에는 지주의 행차를 맞아 땅에 엎드린 수백명의 조선인 소작농
들에게 호떡을 나누어 주었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들은 기억이 나네!!!!
모리히로는 호소카와의 18대 후손으로 1,993년 일본총리 가 된후 그해에 경주
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시에....
보수 우익이 판치는 자민당 중심의 일본정치사에서는 아주 드물게도!!!!
“ 식민지배시 참기 힘든 고통을 끼친데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한다” 고 말했
으며,
“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으로 잘못된 것이니 아시아인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던
것이 당시에 무척 인상적이었는 데!!!!
梅園(매원) 을 지나 초대 영주인 호소카와 타다도시의 동상 과 가부키와 쌍벽을
이루는 가면극 노(能 능) 가 상연되었다는 노가쿠전 能樂殿 이며,
그러고는 찻집 으로 역사가 있다는 고금전수의방 을 흘낏 쳐다만 보고는....
밖으로 나오면서 집사람이 집어드는 것을 보니 하나에 90엔짜리 이른바 호우
라쿠 만쥬 蜂樂饅頭 인 모양인 데....
현지인들이 “이케나리 당고” 라고 부르는 이 과자는 만두피 속에는 고구마를
으깨어 넣었는데, 한입 베어무니 그 맛이 일품이다!!
수전사공원 역에서 다시 2번 전차를 타고는 돌아오는 데, 무언가 짐찜한 것은,
2번 을 확인하고 탈 때 얼핏 “上熊本驛” 이라고 적혀 있엇던 것 같은데.....
하여 전차 안에 있는 노선도를 보니 이런? 기리시마마치 辛島町 에서 웅본
(구마모토) 역 과 상웅본역으로 노선이 갈라지네!!!
하여 구마모토조 마에역에 내려서는 다시 2번(웅본역행) 전차를 타고 6정거장을
가는데, 차량이 마침 2량이라 뒤쪽 보조 차장은 꾸벅꾸벅 졸고있네!
망설이다가 150엔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일본의 환승 시스템 이 어떤지 확인을
할겸 서투른 일본어로 손에 동전을 쥔채 “ 전차를 잘못타서 환승했는 데.....
앞 전차에서 내릴때 요금을 냈는데, 지금 또다시 요금을 추가로 요금함에
넣어야 하느냐“ 고 말하니......
처음엔 차장이 잘 못알아 듣기에 천천히 다시 한번 더 되풀이 말한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그건 (동전을 넣었다는 사실) “하이리마시타” 가 아니라
“이리마시타” 냐고 물어오기로...
조금전에 설명하면서 내가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했음을 개닫는다.
그러고는 그냥 내리라고 하네!!! 우히 이게 왠 떡이냐? 덕분에 집사람에게
낯이 서게 생겼네....
역 근처 구마모토 시가지 를 둘러 보는 데..... 이제 구마모토를 떠나면서
이 도시의 또다른 얼굴 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그 전리품을 러시아가 가로채자 이에
기대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여우사냥”을 벌이니 이른바 을미사변 이라....
밤중에 일본 浪人(낭인) 들이 경복궁 담을 넘어가 총을 쏘니 조선 왕실 수비
대인 시위대 는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다가....
뒤늦게 달려온 훈련대장 홍계훈이 죽자 하나같이 겁에 질려 총을 버리고 군복을
벗어 던지며 모두 도망을 쳤고!!!
하여 황후의 처소인 건청궁 곤녕합 옥호루에까지 침입하여 변복을 한 황후 를
색출하느라 궁녀들을 심문하며 마루아래 “돌바닥에 하나씩 패대기쳐” 죽이는데....
마침내 들통난 황후 를 머리채를 휘어잡고 칼로 시해하고 토막내어 그 시체를
불지른 후 전각 옆 녹산에 묻었으니!!!
그 후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재판에 회부된 자가 미우라 공사등 48인인데...
그중에 낭인(浪人) 들은 구마모토 출신으로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 가 고향
사람 중에서 낭인들을 모으다 보니, 여기 구마모토 출신 들이 21명 이나 된다네!!!
하여 “뮤지컬 명성황후”가 일본 보수우익의 방해 로 아직 일본에서 상연되지는
못하고 있으나...,
작년 10월 8일 명성황후 114주기에 여기 낭인들의 고향 구마모토 가쿠엔대
기념관에서 "뮤지컬 명성황후" 발췌 영상을 틀고서는.....
주제가 5곡을 부르는 약식으로나마 특별공연 이 있었던 것이니!!! 이제는 기차
를 타고 온천마을 유후인 으로 가야하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