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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용 기자의 폭설 내린날 '지옥철' 탑승기
양수골
2010. 1. 4. 16:46
안성용 기자의 폭설 내린날 '지옥철' 탑승기
승용차로 15분 거리인데 지하철을 탔더니 '2시간'이나 걸려 [CBS정치부 안성용 기자] 안성용 기자의 포인트 뉴스'는 오늘의 주요뉴스 핵심을 '쪽집게'처럼 집어 준다. [편집자 주] ![]() 새벽에 평소보다 빨리 잠에서 깼다.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 문을 나선 시간은 오전 4시 45분. 여느날보다 10분 빨랐다. 아파트 문을 열고 나섰는데 밖이 온통 하얗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주저없이 자동차에 올라탔다. 아침 방송을 끝내고 집에 일찍와야 하는 사정때문에 차를 놓고 올 수는 없었다. 지난주 폭설때 엉금 엉금 기어서이긴 했지만 그래도 빙판길을 운전해본 경험이 큰 힘이 됐다. 오히려 다니는 차가 없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하기까지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금천구 독산동 집을 떠나 광명을 거쳐 목동 회사에 도착하니 5시 10분. 평소보다 10분 더 걸렸지만 일찍 나온 10분이 상쇄해줬다. 새벽 근무를 하면서 간간히 창밖을 내다봤다. 눈이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아침 7시가 넘어가면서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슬슬 걱정이 됐다. 아무리 차가 없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은 빙판길을 운전할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차를 회사 주차장에 놓아둔 채 집으로 출발했다. 회사 선배들과 집사람의 충고가 빙판길 운전의 유혹을 완전히 쫓아 버렸다. "돌아서 가니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날은 지하철이 최고야…" 베스트 초이스에 내심 만족해 하면서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예상은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좀 피곤하겠는걸…그래도…지하철이야" 오목교부터 환승지점인 신길역까지 지하철 5호천은 사람도 많았고 평소보다 좀 느린감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독산역행 1호선을 타기 위해 전철 1호선 신길역 3번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가 9시 11분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언제부터 차가 안왔는지 승강장은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차가 들어오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향한 채 투덜거리고 있었다. 역구내에서는 "폭설로 연차 운행이 지연되니 바쁘신 분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안내 방송이 수 분 간격으로 반복됐다.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라 신경만 곤두서게 했다. '지하철이 그래도 제일 믿을만 해서 왔는데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 보라니'…저마다 한마디씩 '불만'을 털어놓았다. 반대편 청량리행 열차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 들어왔지만 열차안은 콩나물 시루나 다름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인천행 손님은 1번 승강장으로 가라는 것. 덕분에 3번 승강장은 사람이 반으로 줄어 견딜만 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천안가는 승객들도 1번 승강장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아닌 명령이 떨어졌다. 투덜대며 지하통로를 이용해 1번 승강장으로 이동하자 몇 분 안 있어 인천행 열차가 한번 지나가고 천안행 기차가 왔다. 정확히 30분만이다. 예상외로 사람이 없는 객차에 들어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한 정거장을 지난 영등포역에서 사람들이 대거 탑승하면서 이내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다 실었으면 문을 닫아야 하지만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다며 도대체가 문 닫을 생각을 안했다. 그 사이 객차는 허겁지겁 뛰어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가득 메워졌다. 이윽고 출발…공포의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차에 탄 사람들이 두 배는 더 많아졌다. 신도림역에서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출발한 열차는 걸어가도 따라 잡을 만치의 속도로 구로역에 도착하더니승객들을 한 무더기 또 태웠다. 여기 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도 문은 닫히지 않았다. 1989년 지하철 파업때 경험했던 콩나물 객차를 20년만에 처음 경험한 것 같다. 구로를 떠난 열차는 가산디지털단지역(가리봉역)을 몇십 미터 앞두고 정차했다. "조금 있으면 역에 도착하고, 공단지역이 직장인 사람들이 내리면 좀 나아지겠지" 그러나 처음에는 신호대기 관계로 서 있다던 안내방송은 나중에 무슨 고장이 났다며 수리되는 대로 출발하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열차 밖 상황을 모른다해도 콩나물 시루보다 더한 열차 스피커에서 죄송하다고 반복해서 뿌려대는 안내방송에는 짜증이 안날 도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게 짜증이다. 왼쪽에 붙은 산도적 같은 남자의 숨소리도 짜증나고, 오른쪽 옆에 찰싹붙은 이름 모를 아가씨의 화장품 냄새는 사람을 돌아버릴 지경까지 몰고갔다. 그러나 객차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화풀이할 곳도 없다. 스트레스를 참으며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도 휴대전화 벨소리는 무슨 좋은 일 났다고 여기 저기서 울려댔다. 숨막혀 죽겠다면서도 '너는 어디냐', '나는 여기 갇여 있다'며 희희덕대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한 것은 회사를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두 시간 뒤였다. 평소에는 승용차로 15분 거리, 전철로는 40분 거리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함에 눈을 감고 있었다는 반성을 했다. * 안성용 기자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그 날의 주요뉴스 핵심을 '쪽집게'처럼 집어 주는 <포인트 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ahn89@cbs.co.kr |